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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마저 사랑하라 외친 죄(罪) '사악한 사제'로 몰린 예수…

▪살림문화재단▪ 2015. 4. 3.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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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마저 사랑하라 외친 죄(罪) '사악한 사제'로 몰린 예수…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예수 평전' 낸 조철수 박사

 

 

"신학대 학생 시절부터 예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난 30년간 틈틈이 모아온 자료를 정리해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로서 예수의 삶과 당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고대 중근동(中近東) 언어와 역사 전문가인 조철수(60) 박사가 《예수 평전》(김영사)을 펴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예수 당시까지 활동한 유대교 현자들과 랍비들이 쓴 문서 그리고 사해(死海)문서 800여점과 1000여편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를 912쪽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에 담은 역저이다.

조 박사를 이 방대한 작업으로 이끈 직접 계기는 사해문서에 나오는 '진리라 불리던 사악한 사제(司祭)'라는 구절이었다. '하박국서 해석'이란 문서엔 "엣세네 공동체에 '진리'라고 불리는 유망한 사제가 있었는데, 그의 마음이 교만해져 하느님을 떠났으며 선동자로 몰려 산헤드린의 재판에 회부됐고 쓰라린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런데 그가 속임수로 새 언약(言約)의 공동체를 세운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서 속의 사제가 예수인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자료들을 통해 예수의 삶에 접근해간다.

책에는 예수 당대 이스라엘의 종교적·사회적 상황이 생생히 그려졌다.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와 결탁한 '사두개', 무력으로 대항해 독립을 이루려는 '열심당', 자기 공동체의 안정과 이익을 추구하던 '엣세네 공동체', 모세 이래의 전통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바리새' 등이 얽혀 있었다. 이들은 서로 상대를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부르고 절기(節期)도 달리 지낼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저자는 이런 혼돈의 틈바구니에서 '예수 공동체'의 좌표를 찾아간다.

조 박사는 "예수는 엣세네파와 바리새파 등의 인본주의적 요소를 종합해 자신의 가르침으로 전파했으며, 인간 특히 소외된 인간과 이스라엘을 벗어난 전 인류로 확대해 가르침을 전한 혁신적 존재"라고 말했다. 사유재산을 공동체에 헌납하고 스스로를 '가난한 자들'이라 불렀던 엣세네파, 바리새 가운데서도 '평화'를 강조한 힐렐파 등의 장점을 예수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예수가 당시 유대교 분파들이 성전 출입조차 금지했던 어린이· 이방인· 장애인을 '새 복음의 공동체'에 들어와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수는 또 엣세네파의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가르침을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뒤집었다. 이런 교리적 차이 때문에 엣세네파는 예수를 '사악한 사제'로 지칭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일부 기적에 대한 문헌학적 해석도 눈에 띈다. '오병이어(五餠二魚)' 즉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에 넘쳤다는 기적에 대해 조 박사는 "예수 당대의 언어인 아람어본에는 '오천명'이 아닌 '오천'으로 기록됐다"며 "'오천'은 히브리어로 '하메쉐트 알라핌'인데, 이를 '하메쉐트 알루핌'으로 읽으면 '다섯 천부장(千夫長)'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각기 천명을 대표하는 사람 다섯명이 예수로부터 성찬의례를 받는 장면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철수 박사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신학대로 전과(轉科)하고 1976년 이스라엘 유학을 떠나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수메르어 문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유대교와 예수》《랍비들이 풀어쓴 창세신화》《수메르 신화》 등의 저서를 펴낸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교회 역사를 보면 여러 차례 혁신이 있었는데 이는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한국 교회도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