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8. 한약조제권 분쟁을 지켜보며 침구사를 생각한다.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8:56

한약조제권 분쟁을 지켜보며 침구사를 생각한다. 오래된이야기들...

이우송 성공회사제

 

한의사와 약사의 한약조제권 분쟁은 쉽게 끝날 전망이 전혀 안보입니다.

보사부가 당초 한의사와 약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린 약사법 11조 l항 7호(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할 것)의 시행규칙을 당사자는 물론 전 문가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삭제한 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네달째 계속된 약사와 한의사의 분쟁을 최수병보사부차관은 ‘한의사들의 40년 동안 쌓인 한이 폭발한 것’이라고 성격규정을 하면서 팔짱을 낀 채 피하려다가 최근 보사부가 여론에 밀려서 다시 약사법 재정을 추진하겠다고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사부 정책이 이권단체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내부제도의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보사부의 주요 관료들이 약사와 의사 출신으로 포진해 이들의 소속집단을 대변하는 로비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의혹도 떨쳐버릴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봉사자로 일해야 할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이익단체의 이권에 좌지우지되면서 빚어낸 보사 정책의 결과는 생각보다 참담합니다.

우리의 의료는 여건상 비슷한 의료체계를 갖추어야 할 중국, 일본, 그라고 북한과는 전혀 동떨어진 제도를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방 선진국의 예에서 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의 독점, 상업화 현상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한 예로 서양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에도 침구사 제도가었어서 매년 미국어 중국어 한국어 그리고 일본어로 치루어 오던 침구사 시험에서 몇 년 전 부터 돌연 한국말 침구사시험이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이유인 즉은 침술의 종주국인 한국에는 정작 침구사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본국에 없는 시험을 치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의료업을 하다가 이민 온 침구사나 한의사도 미국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어로 자격시험을 따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입니다.

 

중국의 최고 의서인 ‘황제내경’에 침구는 동방에서 전례 되었다. 즉 한국에서 왔다고 기술되어 있고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침구의 종주국이 한국임을 인정하고 침구는 한약과 함께 별도의 전문영역으로서 자리 잡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모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는 150여명의 침구사가 의료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으며 약 50만명의 무자격 침구사가 민간으로 전수되어온 침술로 유사 의료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엄연히 존재해 오던 침구사 제도를 폐지한 때문입니다.

당국은 침구사제도를 폐지한 적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전부터 침구사가 제도적으로 있어왔지만 몆 십년 동안 자격시험을 치루지 않고 분쟁의 요소를 최소화 하면서 자연스럽게 침구사제도를 폐지한 셈이지요. 이렇게 된 뒤 배경에는 한의사단체의 끈질긴 압력과 몆 십년에 걸친 지속적인 로비가 뒤따랐다는 의혹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몆 십년간 지속적으로 감소되어온 기존의 침구사들. 한 때는 한의사와 침구사의 영업권 분쟁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영업권주장을 할 세력도 안 되는 남아있는 백 오륙십명의 침구사들이 있지만 그들도 자연수명이 다할 날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현재는 침술이 한의사의 독점영업이 되고만 것도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가 육성해야 할 보조의료인들의 역할과 기능을 전문집단과 보사부의 관료들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놔두고서 문제의 발단을 가져온 상호 모순된 약사법을 놓고 벌이는 영업권다툼에 누구를 편들자는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의료인들의 양심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약조제권 분쟁은 긍정적으로 볼 때 이번사태가 전문집단의 이익이 아닌 이 나라 의료체계를 기본에서 부터 다시 잡는 계기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CBS 1993.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