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10.하느님. 하느님. 목회자도 잘만하면 하늘나라에 갈수 있는 거지요.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8:58

하느님. 하느님. 목회자도 잘만하면 하늘나라에 갈수 있는 거지요.

 

여기 아산 백석포성당에서 농촌목회를 시작한 지가 짧은 20여 개월 되지만 교회는 그때나 지금 이나 변한게 없습니다. 억지로 변한 것을 찾는다면 성당의 비새는 천장을 대강 때웠고 주위에 담장과 철문을 해 단 것뿐입니다. 청작 변화된 것은 못나고 꼭지에 머리털이 송송 빠진 이우송 신부뿐입니다.

얼마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낮익은 얼굴을 봤습니다. 내가 그를 안 것은 그가 장로교 목사님으로 일할 때 알았고 열심히 목회하는 모습이었는데 화면에 나타난 허병섭씨는 작업복을 입고 쇠손을 든 미장이 일용노동자였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목회라면 이도 물론 목회지요.

사연을 들어보니 이런 겁니다. 이제껏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자기네 교인들이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목사직을 반납하고 어중이떠중이로 몰려다니는 일용노동자들과 함께 미쟁이 일을 배워 바닥공동체를 꾸리면서 자신이 목회할 때 생각했던 대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저도 사실 목회라고 하고는 있지만 교회에서 신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고 오래된 교회 일수록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이 기성교회라는 것도 터득했습니다.

더 혹독하게 이야기하면 돌아가신 예수님이 다시금 이런 제도교회로 돌아오신다고 하더라도 이미 변화에 더딘 제도교회는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 이런데를 왜 오셨습니까. 어련히 저희들이 알아서 할 텐데요. 이미 저희들에게는 주님을 대신할 제도와 교회지도자가 있어요. 저 거대한 교회건축물들과 십자가들을 보시면 모르시겠어요?

목회의 정확한 뜻을 채 이해하지 못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그 분의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그도 그럴것 이라고 동감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도 없고, 교회를 변화시킬 능력 도 없는 졸장부입니다. 다만 목회자의 가운을 벗어 반납하고 쇠손과 고대를 손에 든 허병섭씨가 부럽고 그의 용기가 장해보이기만 합니다.

자신이 하는 목회지 에서 자기대중을 그리스도화 시키려고 애쓰다 잘 안되면 타성에 젖어서 기계화 된 목회를 하면서 주님 앞에 죄를 범하게 되나 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군더더기 말을 덜할 생각이고 내 생각보다는 복음서를 있는 그대로 낭독할 각오입니다.

오늘 지난 주보를 훑어보면서 처음 신학교에 입학할 때의 순수함을 되찾아야 할듯 싶습니다. 그러다 안 되면 다음일은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구요.

하느님! 하느님! 목회자도 잘만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는 거지요. 네. 하느님.

[성공회신문 / 목회수첩 1991.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