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11.통치자의 기만이 아니길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8:59

통치자의 기만이 아니길

 

역사란 한 머리 좋은 사학자의 일감에 의해 씌여지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동학혁명이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최초, 최대의 일대 민중운동이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실패의 역사를 한국 근대사의 기점으로 보고 있는 시대사적 관점은 민중들의 당당한 역사인식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정신과 추진력은 한말의 의병운동과 삼일운동 그리고 무장독립운동 등으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현대사에 있어서 4.19와 5.18이라는 민중항쟁으로 계승되어 오늘에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은 현직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 망월동 묘역방문과 잠든 민주 명령들 앞에 참배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십여년간 광주의 오월을 주마등처럼 상기시키면서 감회와 함께 광주시민들은 그 때의 한이 풀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몇 가지 우려도 떨쳐버릴 수는 없습니다.

첫째, 김영삼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하게 되고 망월동 참배를 함에 있어 광주 시민이 제시한 5개 원칙과 15개 요구사항이 몇 가지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둘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남겨둔 미완의 광주 문제를 김영삼대통령이 풀 수 있을까. 어물쩡하게 차별성만 부각시켜주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많습니다.

셋째, 이번에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선벌, 일정 부분 의견만 수렴이 되었을 경우 광주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수 없는 미궁의 역사로 종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순순히 종결될 수 있는 픽션이 아닙니다. 미완의 동학혁명이 광주에서 계속되었듯이 지금 이 시점에서서 광주문제는 다시 조명되어야 합니다.

김영삼대통령의 광주방문과 망월동 참배를 광주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통령 자신도 광주사태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어 기대가 됩니다만. 지난 87년과 92년 대선을 거치면서 광주시민이 그토록 김대중 후보에게 매달릴 수 있었던 사연도 사실은 지역감정보다는 80년도 광주 항쟁 때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 입니다.

김대중씨는 광주시민의 한을 풀어 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심리였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지금 기대하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기대란 월등히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나라 덜 나쁜 정치를 선택하는 것도 성숙한 정치의식이지요.

김대통령 자신도 광주사태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라면 이제 대통령으로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광주의 진상을 밝히고 근본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아제 광주시민들은 김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환영하고 새 정부의 의지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광주 망월동에 발을 딛게 되는 김대통령이 먼저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면 광주사태의 피해자가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연속선상에서 광주민주항쟁에 함께하지 못한 죄송함이 우선해야할 것입니다.

이번 광주 방문 또한 일회적인 방문이 아니라, 광주항쟁의 아픔을 치유하는 첫 발걸음이 기를 기대하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끝나는 통치자의 기만이 아니기를 시민들과 함께 지켜볼 것입니다.

 

[CBS 1993.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