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26.먼저 이놈 맘보를 먼저 씻어 주십시오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12

먼저 이놈 맘보를 먼저 씻어 주십시오

 

며칠 전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금년에 새로 지은 성당이 말이 아니다. 처음에 십자가의 탑 부근의 천정이 새더니만 어제부터는 뒤 천정마루가 새기 시작하는데 아애 우산을 쓰든지 해 야 할 지정이다. 오는 비는 오는 비고, 새는 성당은 새는 성당이고, 내가 속탄다고 당장 될 일이 아니다.

오늘은 충남교무구 신부님들이 우리 성당에 모여 이번에 새로 충남교무구에 부임해 온 나를 환영 겸해서 교무구회의를 한다는 전갈이 총사제님으로부터 와서 어머니회장에게 일러 주었다.

많은 신부님들이 방문하신다고 기쁨 반, 설래임 반으로 교회의 어머니회원들이 아침부터 분주히 식사 준비를 하신다. 시골교회에서 손님 밥 한상 차려 대첩하는 일이 어디 수월한 일인가. 서로들 전화 연락 해대고 혹시 누구네 집 맛있는 특별한 음식은 없는지 수배도 해서 혜서 가져오고, 그래도 고깃근이나 사고 새벽 일찍 온양시내로 나가서 과일도 몇개 사오고, 생선부첨도 만들고 부엌은 여간이나 부산스럽다.

전임신부가 지어 준 별명인 젊은 언니들(50세가 넘은)의 식사 준비가 못미더운지 70이 넘은 할머니 들이 한번씩 엿보고 가는 모습, 그걸 엿보면서 키득거리는 내가 더 옹졸맞고 우스워 보인다.

어색하게 식당 앞을 지나다가 소세지 까는 것을 보고 ”거 참 말자기 같이 생겼네요"라고 불쑥 말해 놓고 무안쩍게 웃는 어머니들 눈총에 뒤통수를 만지며 핑하니 사무실로 들어와 버렸다.

평소 말버릇이 이렇게 무서운 것을.. 말 한번 잘못했다가 망신을 당하다니 채면구긴 꼴이다.

대충 점심 한끼니 먹으면 될 일이건만 어디 사골교회 인심이 어디 그런가. 새로 부임해 온 동료신부와 환명해 주러 오는 신부들을 맞이하는 인심이 결국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셈이 되버렸다.

여간 이나 재미있고 한편 미안한 마음에 부끄럽지만 맛있게 먹었다.

모두들 돌아가신 뒤에 성당에 들러 여기저기 둘러보고서 동네 구멍가게에 나가서 담배 한 갑을 사오는 길에 처녀 때 이 마을에 시집와서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신다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손에 자(尺)를 들고 있어 물어보니 우리가 아직은 살아 멀정하지만 언제 죽을 줄 아느냐며 수의를 같이 만들고 오는 길이란다.

재수 없이 멀쩡이 살아 있는 사람 수의는 무슨 수의냐 물으니, 그렇지가 않다며 수의는 살아계실 때 준비해 두어야 죽을 때 편하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랴.

나이 40도 안된 젊은 놈이 그래 신부가 되었다 손 치더라도 무슨 소리로 그들을 위로해 드릴까. 천당 길 편히 가는 길을 팔십 평생 몸으로 채득한 그들의 진지한 삶 앞에.

걱정스런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선배 신부님들이 하이타이 거품처럼, 스파크 거품처럼, 교회도 가정도 부풀어 일어나라고 갖다 준 계면활성제들. 언제부턴가 모아두기 시작한 저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안 쓰고 쌓아두자니 아깝고, 가게에 가서 덩어리 비누와 바꾸어 쓰자니 그도 이율배반적이고, 눈 딱 감고 버리자나 어디다 버려. 양심 덜 상하게 조금씩 조금씩 아껴서 쓰라고 일러두지만 이내 속이 구려진다.

주님. 그래도 빈손으로 오는 사람보다 계면활성제라도 들고 오는 손님이 반가운 이놈 맘보부터 먼저 씻어내 주십시오.

[성공회신문 / 목회수첩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