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27.이 땅의 살림꾼이 되어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14

 

이 땅의 살림꾼이 되어

 

노선버스를 여섯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곳이 한산촌 수양관 입니다. 차를 타는 시간보다 차표를 구하기 위해 기다린 사간이 더 걸었습니다. 한산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법먹는 일도 내게는 소중한 일과 입니다. 우리들에게 마련된 식탁 위에는 고기란 찾아볼 수 없고 어쩌다 생선찌게가 있을 뿐 죄다 풀밭입니다. 그러나 일단 먹어보나 참 맛은 있습니다.

가능하면 무공해 음식으로, 이곳에서 재배한 푸성귀를 사용했고 영양도 풍부해 보입니다.

오히려 잘못 길들여진 음식문화와 입맛을 확인할 수 있는, 디아코니아자매회 언님들의 애정이 담긴 담백한 음식들이었습니다.

또한 수련회에 참가한 사골교회 전도사님은 손수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계란을 가져와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그 계란 맛은 살맛이었습니다. 살림 프로그램의 일부분인 식후의 설겆이를 하는데도 모두가 재미있어 합니다.

선효정 숙소 l호방은 진풍경입니다·

방문을 빼그시 여는 순간 때 아닌 묵향이 여름 냄새와 어우러져 멋을 더합니다.

어! 이신부님 잘왔어! 먹 좀 갈어!

찬찬히 둘러보니 몇 장의 휘호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습니다. 보아하니 금년 수련회 참가자들에게 글씨를 한 점씩 선사하시려고 올 때부터 문방사우를 준비해온 터였고, 그 방에 들어서면 밑도 끝도 없이 이름을 묻고서 먹을 갈라고 합니다.

그는 몇 십년간 샘물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개발해 알 만한 사람들에게 ‘할렐루야’ 휘호를 써왔던 샘물 김명수 장로입니다. 70년대 민주화 운동한다고 바쁘게 뛰어다니시던 그가 기억납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애띤 얼굴에 허연 머리카락을 흘려 내리고 ‘살림’ 휘호를 척척 긋는 그의 손길은 여간 바쁩니다.

참가자들은 하루 세 차례씩 기도회를 합니다. 예배당 건축물이 기묘합니다. 어머니의 젖무덤 같기도 하고, 초대교인들이 모였던 카타콤 같은 예배당에 일정한 형식이 없이 둘러앉아 드리는 단조로운 음률의 성가와 성사, 성서 묵상 그리고 기도는 가톨릭교회의 피정기도회와 같은 새로운 신앙적 경험입니다.

살림 수련회의 총 주제는 ‘창조신앙과 살림문화’입니다.

안병무 선생님의 주제 강연을 시작으로, 성서연구, 신학강좌, 살림운동의 현장을 참가자들을 통해 간접경험하면서 기존의 교회가 가르쳐 온 창조신앙과 다른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염려도 되었습니다.

일상적 경험을 가진 일반선자들과 신학적 사고를 먼저 하게 되는 성직자들이 함께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성경책을 놓고 함께 수련회를 진행하는데, 토의가 신학적 사고에 끌려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였습니다. 참가자들의 더 큰 공통분모가 있었던 까닭인지 별 문제는 없었지만 대안 없는 관념적인 논의도 있었다는 뒷말도 들었습니다.

특별히 임회숙선생의 생태학적 여성신학에 입각한 성서연구는 남성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참가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디아코니아 자매회 노언님의 안내로 돌산(한삶의 집)을 가는 길은 산 하나를 넘는 자갈길입니다. 산마루에 올라보나 멀리 목포 유달산이 보이고 크고 작은 섬들 사이에는 여름바다가 보입니다. 수련회에 참가한 수십명이 작은 봉우리를 향해 잡아주고 밀어주며 오르는데 보기에 좋습니다. 하얀 수도복을 입고 가파른 돌산으로 오르는 다미아나수녀님은 산 잘 타는 숫양 같습니다.

멀리 보이는 유달산 중턱이 제가 자라난 고향입니다. 돌산 마을은 돌이 많아 돌산인데 만성결핵환자들이 생활하는 자활마을인 셈입니다.

여기 저기 살펴보고, 아저씨 한분의 야야기를 들으며 서러웠습니다. 자신은 사회에서 이발사였는데 언젠가 자기 병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치료가 어려운 만성결핵환자가 된 후였고 그 호로는 남몰래 가슴조이며 스스로를 숨기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가족과 이웃으로 부터의 소외감은 견딜 수 없는 고독함 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돌산에서의 삶은 동료들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이라며 눈가에 뜨거운 이슬이 맺힙니다. 김대성 아저씨의 입을 통한 이곳 식구들의 속사정입니다.

내가 몇 년 전에 이곳 돌산마을에 와서 이현주 목사님과 하룻밤을 잔 기억을 합니다. 그때는 세 식구가 살았습니다. 등공예로 자활을 해왔던 고정님씨와 송정희씨, 옥님씨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가날픈 몸의 송정희씨는 하늘나라에 가셨고, 고정님씨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아 행복하게 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옥님씨는 이 곳, 한삶의 집 식구들 밥을 해주며 삽니다. 몇년전에 만났던 기억을 되살리는 순간 해어져야 하는 옥님씨의 눈빛은 무엇인가의 연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곳 식구들은 2층 계단 오르내리는 데에도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오면 안심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방문객들은 2층 구석방에서 산소통을 보았습니다. 이분들은 밥보다 산소가 더 절실한 사람들입니다.

수련회 참가자들은 한삶의 집으로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발 검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참가자들의 말수도 훨씬 줄었고.

마지막 밤의 캠프파이어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머리 좋은 한 두사람의 기획에 의해 진행되지 않고 각조에서 경험이 있거나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 위원회를 구성 해 수련회의 총 주제에 맞추어 살림의례를 중심으로 형식과 내용을 채워내는 것입니다. 각조가 준비한 선언적 의미의 고백을 하고 극을 진행합니다. 촌극이 끝날 때마다 박장대소 하는 참가자의 뇌는 다소충격을 입었을 것입니다.

쌓인 창작더미에 불이 당겨지며 언님들의 흥겨운 사물놀이가 시작됩니다. 얼마 전까지 고뇌함이 엿보이던 수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수도복을 내팽개치고, 아니 그런 껍데기는 처음부터 없었던 양 구름을 동반한(북) 뇌성소리와(꾕과리) 비를 동반한(장고) 바람소리(징)가 어우러지며 한여름 밤의 살림의식은 고양되어 갑니다.

언님들을 뒤따르며 엉거주춤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춤이란 게 뭐 배워서 추나요. 신명으로 추지요. 그냥 불규칙하게 사지를 휘저으며 장단에 맞추어 꺼덜거리다 보면 멋진 한판 춤이 됩니다. 춤의 형식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비 온 뒤끝에 지렁이 꿈틀거리듯, 소리 없이 영숙언님의 안내에 따라 명상 춤을 추며 서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생명의 빵과 생명의 술이 나뉘어집니다. 떡사발과 술사발이 몇 순배 도는 순간 타오르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우리들은 천천히 한 덩어리가 되어갑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 일상생활의 상징인 식사(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나눔의 공동체를 형성하라고 했습니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고전 10,17)”

마치는 날 작별하는 시간이 깁니다.

한 인사 또 하고 한 인사 또 하고, 이 손이 저 손 잡고 저 손이 이손 잡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딱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저들은 분명 이 땅의 살림꾼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저들이 혹 내년에 살림 수련회서 다시 만나면 족히 십년지기의 친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 살림 1991. 9월호. 한국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