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74.꿈 많았던 신학생 시절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20:01

이우송사제칼럼

꿈 많았던 신학생 시절, 오래된이야기 

 

 

 

신학교 기숙사에서 지세웠던 긴긴 밤이면 교회를 몇 개씩 지었다 헐어도 보고, 몇백명의 신자들도 모아보았다.

이런 기억들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목회현장의 한복판에서 눈꼽을 비비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허무한 개꿈이었다.

나에게 지난 개꿈을 일깨워준 일은 매월 어김없이 보내오는 넓찍하고 도톰한 고급아트지 화보였다. 화려하게 꾸며진 칼라판 소식들을 접하면서, 프로그램 비용이 없는 도회지 빈민교회가 떠올랐다.

 

연건평 2천명의 예배당을 지어놓고, 강대상위에서 몇천명의 성도들을 향해 박사후드를 걸친 성공한 성직자들의 얼굴을 펼칠 때마다 내 행색과 비교해 본다. 이 땅의 기독교는 이만하면 성공한 챔이다.

교회나 신도수를 세어봐도 성공했고, 재산도 이만하면 손가락 열개 헤아려 계산이나 가능한가. 한국교회는 흥할 만큼 흥했다. 90년도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 종교와 종교의식 의 통계에서 66%이상이 종교가 종교의 본래의 뜻을 잃었다고 답변하는걸 보면 요즘의 교회는 종교적이기보다는 교세확장에만 관심을 가진 반종교적이고 반역사적이다.

 

교회가 지금껏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어떤 교리와 수단으로 교세를 확장했는지도 이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더 잘알고 있다.

지금의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무슨 달콤한 말을 해도 귀를 기울이거나 믿을 사람이 별로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갈이 있는 법이다.

 

이제부터 거꾸로 한국교회가 망하는 꿈을 꾸어본다. 한국교회 특히 자본주의 논리와 함께 성장한 도시교회의 비대함과 부도덕성애 실망한 신자들이 하나씩 교회를 때나는 꿈.

새벽이면 주택가 개척교회에서 울어대며, 성전을 짓는다고 현금이나 강요하고, 이것저것 팔기 위해 판매조직이나 갖추며, 급기야는 사기꾼 집단임이 들통 나서 파산도 하며, 머릿수 세어 두당 얼마씩 사기도 하고 팔려 다니기도 하는 신도들이 이제는 그런 교회를 향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꿈.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르고 바치는 현금의 댓가로 내려주는 구원의 티켓과 축복의 외침을 거절하며 맘모스 교회를 빠져나와 먼지를 툴툴 터는 별난 꿈을 꾸어본다.

교회에서 근거 없이 부유해진 성직자는 이제 알거지가 되어 실존적인 삶의 현장에서 성도들을 만나야 한다. 자기도 못 믿으며 남에게 예수 믿으라고 개거품을 물던 삮꾼 성직자도 생산적인 자기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는 꿈.

 

하느님의 정치는 권력의 만행에 저항하는 정치이다. 요즈음의 교회가 직업정치인들과 독재자의 입을 대변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정권을 겨냥하거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행위라고 속이며, 정치와 종교를 구분해 놓고 제도적으로 기득권을 장악한 고위 성직자들은 교회 안에서 더러운 음모를 꾸미다 신도들에게 들통이 나는 꿈. 아울러 비정치적 모임이라는 조찬 기도회에 나가 부정한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까지는 최소한의 종교적 양심만 가져도 구별이 되는 행위이니 알만한사람들은 다 안다. 거기다 더 무서운 교회 정치꾼들은 진보적 단체에서 선한 목자의 탈을 쓰고 성도들의 대표인 것처럼 떠들며 교회를 교란시키는 사람이다. 그들을 보거든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지체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한다.

 

그 옛날 마을 모퉁이 모퉁이마다 꽂힌 무당의 장대만큼이나 솟아오른 십자가와 종탑이 이 땅에 화평을 가져 왔는가. 불화를 가져왔는가.

한국사람 네명 중 한명이 기독교인언 것이 뭐가 자랑스럽고, 일천만 신도가 있어서 이 땅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더 이상 하느님을 콘크리트벽에 가두어 두고 불의한 자에게 돌이킴 없이 축복과 구원의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교회는 어서 망해야 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한국교회가 반쯤 망했기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중지시킬 까닭도 없다. 기왕에 망할거라면 빨리 망해서 주님의 속뜻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가. 꿈이란 다소 지나쳐도 꿈일 뿔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꼬임에 빠져 우상을 우려르지 말자. 교인이 몇 명이냐고 묻지도 말자. 혜교회의자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지 말자. 당신네 교회 임대교회냐고도 묻지 말자. 이런 질문하는 사람이 곧 사탄의 끄나풀이다. 농촌에서건 도시에서건 우리가 서있는 삶의 자리에서 숫자가 적어도 좋고 공간이 비좁아도 좋으니 소박한 신앙의 자리를 꾸려 보자. 이제는 작은 교회의 운동을 통해 건강한 한국교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새누리신문 1991. 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