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90.개의 충성스러움을 배우는 해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20:17

 

개의 충성스러움을 배우는 해

이우송사제칼럼

 

개의 해를 맞이한 한국은 정치권의 개혁과 함께 국제화, 개방화 등 무엇인가 변하지 않으면 전진하는 역사 앞에 낙오가 되고 말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회도 개혁이 가능할까? 개혁은 고사하고 갱신이라도 가능할까? 필자는 지금이 한국성공회의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전환기라고 생각한다.

10여년 전에 장공 김재준선생이 살아 계실 때였다. 그 당시 실험교회를 하면서, 장공선생을 모시고 치악산에 간 적이 있는데 산상에 오르신 장공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종교개혁은 이미 교회형성 직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로마교회 등 흩어진 교회가 로마가톨릭이라는 보편적인 교회로 하나가 되는 운동이 1차 종교 개혁이고, 16세기의 종교개혁은 2차 종교개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3의 종교개혁을 요구 하고 있는데 굳어버린 교회를 해체하고 작은 공동체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모델로서 여러분의 이 작은 모임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하시며 교회는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가 아니라 개혁되고 있는 교회(Reforming Church)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통렬한 지적인가?

물론 필자는 장공이 말하는 교회갱신의 방식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적용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개혁교회이다. 개혁하지 않거나, 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 자신이 보여준 삶의 주제가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종교였던 기독교는 끊임없이 개혁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켜 왔던 것이다.

하느님나라의 도래 또한 어느 날 아첨에 맞이하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가 가는 곳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통해서 마침내 이르는 곳이 하늘나라가 아닐까?

오늘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불신과 도덕불감이라는 질병을 누가 치료할 수 있을까? 정치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고 종교, 즉 교회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누가 그러던가, 한국의 교회는 긁어도 굵어도 자극을 못느끼는 문등병자와 같다고, 더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주인 없는 빈 집에 객들만 모여 잔치를 하고 있다고, 필자는 적어도 한국교회를 그리스도 없는 교회라고 까지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에 고개를 휘젓고 싶지는 않다.

물론 어느 개인이나 집단도 도덕적으로 완전할 수 없으며 완전한 도덕적 권위라야만 치료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을 무시한 결백증세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교회를 보고 사회적 위기요, 신앙적 위기라고 인식하고 자정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교회의 개혁과 신앙의 갱신이 요란한 구호나 전투적인 투쟁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꾀죄죄한 땟국물을 씻어내지 않고 관구라는 코트 한벌을 걸침으로서 교회가 많이 변했다고, 그리고 성숙했다고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분별없는 감상이 아닐까?

사실 100여년 동안 경험해 봤지만 안되는 관행을 고집할 것이 아니다. 김진만 선생의 표현대로 성공회의 둘도 없는 은사이며 꽃인 의회제도가 상식수준에서라도 운명될 수 있기를 바라고, 민주적인 의회재도가 정착되고 소위원회가 활성화되고, 결의가 집행되는 과정을 통해서 개혁이 단행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신앙은 영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고 그러한 신앙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갱신을 할 수 있다.

때마침 한국성공회의 상징적 지도자이신 세 분 교구장의 신년교서가 진부한 가운데 이채롭다

서울교구장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맞아 한국성공회야 말로 새로운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 하고 대전교구장과 부산교구장은 역사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신앙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때 다행스럽다.

괄목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실천 가능한 교서로 보여서 눈길을 끈다. 이것이 교구장 의 교서가 아니라 성공회 공동체의 실천 철의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특히 개의 해를 맞아 개의 충성스러움을 배워서 하느님의 충견이 되어 더욱 비장한 각 오로 신앙생활을 하자는 다짐도 있다. 그런 반면에 우려 또한 떨쳐버릴 수 없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해 인간답지 못한 사람은 개만도 못하다고 하던가?

자못 우리의 각오가 요란한 구호와 풍성한 말잔치로 끝나는 개판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성공회신문 제3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