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태학(divine saminary)/오미아 단상

[오미아의 산행기]산과의 만남 2

▪살림문화재단▪ 2015. 3. 13. 04:01

[오미아의 산행기]

 

 

산과의 만남 1

 

대한민국이라는축복 받은 땅은 흔하게 산이 있어서 큰 맘을 먹지 않아도 산을 볼 수가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다가도 문득 산허리를 감고 있는 구름에 메료 되기도 하고, 바닷가 옆 산자락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도 있다
서울만 해도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수락산 등 크고 넉넉한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산들이 있기 마련이다
너무 흔해서 일까 산에 가는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닌 듯 하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가볍게 나들이 하기도 하고, 막걸리 한잔 걸칠 요량으로 산자락을 찾기도 한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가볍게 한 두 시간 등산 하는 것 쯤은 생활의 일부처럼 될 수도 있다

물론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산은 그저 바라 보기 좋은 풍광일 뿐이지만, 산 근처를 서성이는 일은 기분 좋은 여유로움이다
 
내가 산에 간다는 일로 가슴을 설레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산는 산이고 나는 나로서 한 하늘을 이고 앉아 있다는 의식 조차 없이 지내왔다
산이 있어 불편한 적이 더 많았고, 행여 조금이라도 발 들일 일이 생기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남 달리 아픈 구석이 많았던 나로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낯선 세계였다
내 다리를 움직여서 갈 수 있는 거리는 내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거리였고,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지척 간도 차를 운행해서 움직여야 할 정도이니, 산을 오른 다거나 짐을 지고 간다는 것은 언감 생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나를 알고 있는 터라 내게는 누구도 산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클럽이나 영화관 놀이동산 등의 인공적 세계에서 노닐어야 맘이 놓이고 논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내가 산에 가게 된 것은 참 묘한 우연이었다
무식하면 용감 하다고 했던가
바다가 보고 싶어 몸살을 앓던 중 동해 바다로 가는 산행 모임차를 타게 된 것이다

산행 대장님의 완곡한 권유도 있었지만 산행 모임차가 바다쪽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무조건 따라 나서기로 했다.
결국 산행과 상관 없이 바닷가에서 노느라 산행팀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쳐버렸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때문에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산행팀의 버스를 바닷가에 묶어두고 핸드폰까지 꺼두어서, 산행팀을 추운 산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가둬두었다
산속까지 택시를 대절해서 경포대로 돌아오는 산행팀을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어서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산처럼 품어주는 너그러움에 나도 산행 식구가 되어버렸다
그 날 아침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는 겨울 바다 누스쇼였다
시퍼런 겨울 바다속을 맨몸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쌕시함을 넘어선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저 기상으로 저 열정으로 산을 오르는 것이로구나
눈 산을 녹이고 얼음 바다를 건너는 힘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연만큼 질긴 인연도 드물다고 했던가
산행팀을 추위에 떨게한 인연으로 시작된 나의 산행은 산행팀 모두의 배려와 인내로 기적처럼 이어졌다
바닷가 사건이 있던 날, 산행팀은 가볍게 오대산 서대 염불암 등반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지은 죄가 있는 나로서는 거절 할 수 없는 산행이었다
눈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산길을 생전 처음 접해 보았고, 그 곳을 내가 걸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산행팀이라 서대 염불암 정도는 산책인 듯 다녀오면 된다고들 하지만 안방 공주님이던 내게는 천길 만길 긴 여정이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아갔던 오대산 길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발을 딛기도 힘들 만큼 미끄러운 눈 길에 급하게 장만한 홈쑈핑 등산화는 미니 봅슬레이가 되어 나를 눈 길에 내팽겨치고만 것이다
또다시 누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아 갔지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큰 짐을 옮겨주던 산행팀의 넉넉함은 산보다 더 큰 감동이었다
어렵게 올라선 서대 염불암
이런 곳이 있었구나.....
내가 선 하늘아래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도시서 자란 나는 다른 별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산과 산이 이어지고 그위를 덮은 하늘
그 선경에서 나는 또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산속 공기만큼 순수해진 나는 하늘처럼 맑은 사람들의 얼굴과 마주하고 서서 산을 탄다는 일의 숭고함을 맛 볼수 있었다
이런 것이구나 사람들이 땀을 흘려가면서 다시 내려올 그 산을 오른다는 것이 이 때문이구나
내가 흘린 땀을 밟고 서서 내 가슴으로 들어마신 공기를 통해서만 함께 할 수 있는 축복같은 선물이구나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절대로 사랑을 알 수 없 듯이, 산을 자신의 발로 오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산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으로 흘려보던 풍광 같은 산은 품어 보지 못한 이쁜 여인과 같은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산처럼 순수해진 나는 산에서 읽은 시 한 줄에도 마음이 열렸다
시인의 마음이 내 맘처럼 다가와서 금세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리고 마음이 미어져 왔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그저 글로 읽는 시였는데 산 마루금에서는 마음으로 시를 읽게 된다
사람이 산처럼 자연스러워 진다
그 또한 산이 주는 선물인가 보다
산에서 시를 읽는 독특한 산행팀을 만난 것도 나의 복인 것 같다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나니 민망하기 이를데가 없다
산행을 위한 통과 의례는 이렇게 미안하고 민망하고 민폐를 끼치며 이어졌다
 
내려오는 하산 길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눈 속에 설 수 없던 나는 굴러가는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구르듯 미끄러져서 내려오는 것이 더 편했다
엉덩이로 하산을 마치고 대기 하던 차에 올랐을 때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떠나왔다는 서운함이 교차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첫 눈에 반한 남자를 만난 듯
가슴 벅찬 설레임과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소름이 돋았다
나는 또다시 산에 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눈 녹은 봄 나는 또다시 산으로 향했다

 

다음에 계속........ 

 


산과의 만남 2

 

눈 녹은 봄 나는 또다시 산으로 향했다
많이 기다려 온 산행이었다
두렵기만 한 산행이었지만 꼭 다시 보고픈 산 정상의 풍광이 눈에 어려서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난번 산행 때 짐처럼 굴러 다녔던 기억이 내 발목을 잡긴 하지만 첫 눈에 반한 그 설레임이 가시지 않고 내 손목을 잡아 당긴다

이번 산행을 위해 동네 앞산 뒷산 북한산 등을 다녔다
동산 몇 개를 오르내린 것으로 없던 내공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산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확인 하고 기약하기 위해 틈나는데로 비탈길을 걸었다
정말 신기 할 따름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니 내 스스로도 상상이 안가는 모습이다

눈으로 인해 두 번이나 되 돌아가야 했던 삽당령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산에 대해 무지한 나는 그저 강아지 마냥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서울서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3시가 넘어서 강원도 산속에 도착 했다
차가 멈추자 선잠을 깨치고 일어나서 산으로 오를 준비를 한다
깜깜한 산 중에 갑자기 전운이 감도는 듯 했다
장비를 갖추고 짐을 챙기는 모습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비장하기 까지 했다
말소리 하나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신발을 묶고 배낭을 메고 전등이며 장갑이며 장비들을 챙기고는 한 사람씩 차에서 내려 서서 산을 바라 본다

깜깜한 산중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그림자와 어슴프레한 별빛만이 차갑게 검은빛을 뚫고 시야에 들어왔다
몸을 감는 바람이 에이듯 시려왔다
산 속은 아직 겨울이었다
갑자기 겁이났다
마냥 신나서 따라가는 산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차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못간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따라나섰다
깜깜한 산중을 소리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속을 그저 묵묵히 따라 걸었다
숨이 차오르고 몸이 젖어와도 그냥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이 힘을 발휘 한 듯 일행과 떨어지지 않고 한참을 올랐다
앞 사람의 인기척만이 나를 붙잡아 줄 수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고마웠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앞 사람의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걷기에 급급해서 주변을 둘러 볼 경황이 없었는데 서서히 주변의 나무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파리한 새벽 기운에 숲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여기 저기서 새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부지런한 새들이 숲을 깨우고 아침을 맞이하는 이슬들은 영롱한 빛을 머금었다
갑자기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을 한 듯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깜깜한 암흑에서 헉헉 숨소리만 차오르던 산속이 새들이 지져귀고 후드드득 나뭇잎 이슬 방울과 인사를 나누는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두어시간을 정신 없이 �아온 길이었다
이제야 앞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 할 수가 있었다

야심한 밤에 정신 없이 걸아온 산 길이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선다
얼떨떨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눈 앞이 환해져 온다
눈 앞의 벽처럼 느껴지던 산이 그 끝을 드러내 보였다

하늘이었다
산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늘이 산 마루금에 이르르니 보이기 시작했다
파르스름한 하늘이 보이고 올라설 수 있는 산자락의 끝도 보였다
갑자기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끝에 설 것만 같았다
하늘을 잡아끌 듯 산마루를 올랐다
산마루 위에서 나는 또다른 하늘을 만났다

바다였다
발밑에 일렁이는 운무 사이로 파란 바다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동해 바다가 새벽 운무를 걷고 내 눈앞으로 점점 다가섰다
걷히는 운무 사이로 간혹 밝은 햇살이 비춰졌다
조금 흐른 날씨라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었으나 점점 점령해 오는 태양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함이 더해질수록 눈 앞을 가로막던 구름들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었다
모든 것들이 분명히 보이는 쾌청한 아침이다
갑자기 주저 앉고 싶어졌다
산 마루금에서 이대로 시간이 멈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행들은 쉬지 않고 바다가 보이는 능선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밤 새 걸어온 피로감이 환해지는 풍광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듯 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만큼 몸이 무거워졌다
앞 사람을 불러세울 기운조차 없었다
눈앞에 아름드리 노송들이 저승 사자처럼 보였다

마침내 대장님이 노송 아래서 다리쉼을 하자고 하셨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쉬는 일 밖에는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산 바람이 지친 땀방울을 식혀 줄 뿐이었다

멍하니 산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너무 많은 산들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 봉우리들이 내 발밑에 겹겹이 끝닿을데 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어둠을 뚫고 백두대간에 올라왔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뛰었다
이어진 산봉우리들이 내 등줄기를 뚫고 지나가는 듯 했다
깊은 숨을 들여 마셨다
백두의 기운이 나를 돌아 나오는 듯 했다
대간의 산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꿈틀거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또다시 길을 걸었다

임도를 지나 산죽이 많은 산길로 접어 들었다
산죽 사이로 걷는 기분이 묘했다
오즈의 마법사가 찾아 나서는 미지의 세계인양 산죽이 펼쳐진 산길은 살아 움직이는 정령들에게 둘려 싸여진 듯 했다
산의 기운이 느껴져서였을까......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 가듯 계속해서 산길을 걸었다

길은 끝이 없었다
이미 너무 먼 길을 와서 돌아 갈 수도 없었다
주저 앉아서 나 혼자 남게 된다면 그건 더욱 큰 낭패였다
돌아 갈 수도 주저 앉을 수도 없으니 그져 계속 걸을 수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길만 보고 걷다가 문득 함께 걷는 이들이 눈에 들어 왔다
혼자서는 걷기 힘든 길을 함께 가는 이들이 있어서 가는구나 하고 생각 하니 새삼 고마웠다


한참을 걷다가 보니 두릎밭이 눈 앞에 펼쳐졌다
대장님이 두릎을 먹으면 힘이 날 거라면서 씨알 굵은 두릎을 따주셨다
한 잎 베어무니 입안 가득 싸한 향이 번졌다
정말로 힘이 부쩍 나는 듯 했다
산이 주는 선물 인 듯 너무도 맛있는 두릎이었다
간간이 손에 잡히는 두릎을 따면서 걸으니 정겨웠다
대장님이 다 따지 말고 산을 위해 남겨 두라신다
그 말씀도 따뜻했다

두릎을 따면서 정신없이 걸어가던 산길에서 스스슥 거리는 기척이 들린다
무언가 거무죽죽 한 것들이 순식간에 눈 앞을 스쳐갔다
순간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 왔다
깊은 산 중에서 만난 인간이 아닌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앞 사람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멧돼지 봤어요?”


앞 사람이 내게 물었다


“멧돼지였어요?”


갑자기 다리가 후들 거리면서 산속이 깊은 장막처럼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이 산 속을 걸어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 하니 뒷골이 오싹하다
다행히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힘이 되었다

멧돼지를 만난 후부터는 더욱 일행과 떨어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기를쓰고 걸었다
낭만적으로 걸어가던 산길이 공포스러운 세계로 변해서 나를 엄습해 왔다
점점 두 발이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거워졌다
급기야는 내 온 몸이 땅 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았다

거의 빈 가방으로 따라온 산행인데도 견딜 수가 없었다
출발할 때 넣어왔던 북어가 출렁이며 내 발길을 막는다
화란 봉에 올라가 산제를 지낸다고 해서 들고 온 북어다
형태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배낭 앞쪽에 꽃아 왔는데 걸을 때마다 덜렁 거린다
다른 사람들은 떡이며 과일이며 밥이며 무거운 짐들을 잘들 지고 오르는데 가장 가벼운 것 같아서 맡았던 북어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화란봉 화란봉을 주문처럼 되내이며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화란봉이 나타나주지 않는다
점점 일행들과 멀어졌다
한 발을 내 딛기가 태평양 건너기 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주저 않으면 내 생도 여기서 끝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무조건 걸어야만 했다
화란봉이 나올때까지 이를 악물고 두눈을 질끈 감고 걸었다

한치 앞을 분간하기도 힘든 만큼 몽롱해졌을때 화란봉에 올라섰다
다른 일행들은 산제를 지내려고 떡과 과일 음식들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깊은 산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반갑다
일행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제수용 북어가 도착해서 반가운 건지 파김치가 되어 살아 걸어온 내가 반가운 건지는 분간이 안되지만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런 맘 일 듯 하다
반가움과 서러움이 하나가 되어 울컥 눈물이 솟았다

화란봉에서 산제를 지냈다
처음 지내는 산제라서 어색했지만 절을 하면서 걸어온 길을 생각했다
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차올랐다
산이 보여준 그 신성함이 나를 겸허하게 만들었다
산은 두려웠고 힘들었고 너그러웠다
산이 품어주는 한 산에 있고 싶다고 산신령님께 빌었다
내 맘이 쉬고 싶을 때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다면 산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대답없는 산이지만 거절하지 못할거라는 것도 알수 있었다

산제를 지내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산신령님이 흡족히 드시고 남은 음식이길 기원하며 먹었다
꿀맛이었다
힘들게 지고온 북어는 유난히 맛있어서 껍질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다
경건한 마음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끝내 죄스러웠다

화란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가파랐다
그렇게 많이 올라 왔으니 내려 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운이 다 빠진 상태에서 걷는 걸음이라 더더욱 힘들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온 거리만큼을 더 가야 한다는 것이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제수용 북어를 불경스럽게 다루어서 산신령님이 나를 이 산에 묻으려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드리 금강송들이 저승사자처럼 다가왔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깜깜한 새벽 겨울 바람 속에서 출발한 산행이었는데 한낮의 여름 땡볕을 걷는 듯 했다
이미 시간 관념을 잊은지 오래다
산속에서 일년이 지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산속의 계절은 혼미하기만 하다
내 정신도 혼미해졌다
이제는 내가 걷고 있는지 흐르고 있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저 습관적으로 발을 내 딛고 있을 뿐이다

미궁 속으로 빠져 들 듯이 몽롱한 상태로 한참을 내려오니 닭목재에 이르렀다
내겐 익숙한 동네다
일년이 넘게 이 곳에서 지냈었다
그러나 그때도 이 곳 깊은 산속까지는 와 본적이 없다
큰 도로에 내려서서야 익숙한 길이 눈에 들어 왔다
익숙한 길 위에 내려서니 해방감이 느껴졌다
산이 나를 구속한 적이 없는데 나 홀로 나를 구속하고 있었나 보다

대기리 큰길에서 아침을 먹었다
늦은 아침이었다
몇 일을 굶은 사람처럼 허기가 밀려 왔다
장금이 언니가 장만해 준 밥을 먹었다
정말 맛있고 귀한 밥이다
길에서 먹는 밥이지만 황후의 만찬을 받은 듯 황홀했다
밥 힘으로 산다고 했던가
정말로 살 것 같았다

피곤한 몸에 배까지 부르니 몸은 천근 만근이다
누군가 업어서 나르지 않는 한 산을 오르는 일은 불가능 했다
다행히 원하는 사람만이 산행을 계속 한다고 한다
산행을 계속할 일행들은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또다시 산으로 향했다
새털 같이 가벼운 몸짓으로 산으로 가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 모습이 도사들 같았다

내 눈꺼풀 위로 태산이 올라 앉은 것 같았다
한 세상을 살아낸 듯 편히 눈을 감았다
한참을 자다 보니 버스가 정동진에 도착했다
자기 전에 버스 기사님께 정동진으로 가자고 졸랐던것 같다
눈 앞에 푸른 바다가 보였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또 다른 세계다
시야에 걸리는 것 하나 없는 푸른 빛이 펼쳐졌다
세상의 끝자락 수평선이 보인다
산과 바다를 누비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하다
삶의 충만함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살길 참 잘한 것 같다

루프스라는 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어 온 때가 생각난다
너무 힘들어서 생을 놓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삶에 대한 본능은 강렬했다
10년 전.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간 뒤 몇 일을 혼수 상태로 지내고 나서 눈을 떠 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에도 간혹 너무 피곤 할 때는 약간의 마비 증세는 있었으나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스물 여덟, 그때는 너무 젊었고 하고싶은 일이 너무 많았기에 내 몸을 돌보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고가 아니면 죽음을 맞이 하는 일은 아주 나중에, 잊고 있어도 좋을 만큼 한참 뒤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겼다
사고처럼 죽음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를 점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삼년간,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 하루 하루를 맞이했다
너무도 귀한 하루였다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하루들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고르게 숨을 쉴 수 있었으면 내 팔 다리를 제데로 움직일 수 있었으면 더욱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텐데 하고 바라다가도 그 소망마져 사치스러워 겸허히 하루를 맞던 기억이 난다
살기위해 이런 저런 구차한 일들을 하기 보다는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시간을 누리기로 마음 먹으니 평화로왔다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록 새로운 삶이 채워졌다

無自性
내꺼라 고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머리로만 읊어애던 中論頌이 가슴으로 와 닿았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 이치 한 자락을 병으로부터 선물 받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내가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이 많아서 인가 보다
부채만 쌓여가는 듯 하다

남은 일행들과 함께 등명낙가사 옆 하슬라 아트월드에 갔다
바다를 정원 삼아 커피를 마셨다
커피에서 바다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이 바다 정원을 함께 만든 이들이다
산처럼 바다처럼 행복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커피를 먹고 나니 술이 고팠다
다른 일행들은 생사를 넘나들으며 험한 산을 타고 있을텐데
의리 없이 술을 먹는다는게 맘에 걸리지만 몸이 강력히 알콜을 원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바다처럼 시린 소주를 먹었다
세꼬시를 산처럼 쌓아주는 주인의 맘이 넉넉하다
옴 몸에 전류를 타고 흐르 듯 알콜이 번져 나갔다
함께 술잔을 나누는 이들의 얼굴이 해처럼 떠오른다
일배 부 일배
정을 나누고 잔을 나누니 알딸딸하다
산 때문에 다리가 풀린 건지 술 때문에 다리가 풀린 건지 구분이 안가지만 몸과 마음이 다 풀어져서 거리낄 것이 없다

의리 없는 술을 먹다 보니 일행들이 산을 내려 올 시간이 다 되었다
부리나케 버스에 올라 대관령으로 마중을 갔다
버스에 올라 탄 후에도 흥이 끊기지 않았다
기사 아저씨의 배려로 버스의 여흥이 계속 되었다
내가 그렇게도 혐오 하던 묻지마 관광 버스와 흡사한 모습이다
천국행 버스를 탄 것 같다
신명이 난다
산 타는데에 모든 기운을 소진 한 것 같았는데 어디서 이런 기운이 나오는지모르겠다
모두가 행복하고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대관령으로 접어드니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안개 자욱한 길을 한참을 오르니 마치 선계에 있는 듯 했다
사방을 둘러 봐도 산자락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들은 이 구름속을 뚫고 산을 타고 있었단 말인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조바심은 나 혼자만의 기우인 듯 모두들 편안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일 것이다

잠시 후 일행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다
지친 모습이었으나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들의 영혼도 신선처럼 가벼워 진 것 같았다
고루포기산을 넘어 능경봉을 지나 대관령으로 하산하니 그 길이 엄청나다
시계를 보니 산을 타기 시작한지 13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그들이 도깨비처럼 신기해 보였다
지친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와서 인가 보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모든 일행을 태운 버스는 산을 뒤로 한 채 서울로 향했다
자꾸 뒤를 돌아 보게 된다
내 가슴 한 켠을 산에 두고 온 것 같다

‘또 올께요’

멀리 구름 속에서 산이 위용을 드러 낸다
두고온 님을 보는 듯 아쉽다
참 듬직한 모습이다 


*오미아박사(종교예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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